5·18민중항쟁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 새벽까지 열흘 동안, 전두환을 정점으로 한 당시 신군부 세력의 진압에 맞서 광주시민과 전남도민이 ‘비상계엄 철폐’, ‘유신세력 척결’등을 외치며 죽음을 무릅쓰고 민주주의 쟁취를 위해 항거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항쟁 기간 중 22~26일 닷새 동안은 시민들의 자력으로 계엄군을 물리치고 광주를 해방구로 만들어 세계사에서 그 유래가 드문 자치공동체를 실현하기도 했습니다.
계엄군에 의해 진압당한 이후5·18민중항쟁은 한때 ‘북한의 사주에 의한 폭동’으로 매도당하기도 했으나 진상규명을 위한 끈질긴 투쟁으로 1996년에는 국가가 기념하는 민주화운동으로, 2001년에는 관련 피해자가 민주화 유공자로, 5·18 묘지가 국립5·18 묘지로 승격되어 그 명예를 온전히 회복하였습니다. 5·18민중항쟁은 한국 민주주의의 분수령이 되는1987년 6월 항쟁의 동력이 되어 민주주의 쟁취와 인권회복으로 이어졌습니다.
5·18민중항쟁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된 민주화운동의 원동력이 되었고, 군부독재에 결정적 타격을 가한 87년 6월 항쟁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5·18민중항쟁은 95년 5·18특별법으로 제정되었으며, 전직대통령이었던 전두환, 노태우 등 92명이 내란·내란목적살인죄 등으로 처벌받기까지 전 국민의 염원이 모여 5·18민중항쟁 정신계승으로 이어졌습니다. 5·18민중항쟁으로부터 87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광주를 비롯한 전 국민이 보인 저항과 참여, 연대의식은 오늘날 세계 곳곳에 중요한 민주화운동 사례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중요성을 인정받아 2011년 5·18민중항쟁 관련 자료들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지금 5·18민중항쟁은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고 있는 아시아 여러 나라의 민중에게 귀중한 경험을 제공해주고 있으며, 동시에 민주화운동이 지향해야 할 정신적인 지표로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 세계인들에게는 위대하고 아름다운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한국 민주주의의 밑거름 역할을 했다는 면에서 광주와 대한민국의 민중은 5·18 정신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으며, 그 정신을 민주·인권·평화·통일 등 새로운 시대에 새롭게 제기된 과제로까지 확장시켜나가고 있습니다.
※ 국가기관의 공식명칭은 5·18민주화운동(1995.12.21.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입니다. 기념행사위원회에서는 5·18민주화운동의 주체이자 동력이었던 ‘민중들의 항쟁의 정신’과 80년 이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을 위해 투쟁했던 ‘민중항쟁의 역사’를 계승·발전시키고자 ‘5·18민중항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